전주에 사는 27살 여성입니다.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학생이라 사람들이 분노하며 탄핵 시위를 하는 데에 참여하지 못했어요. 그게 빚을 진 듯한 마음으로 최근까지 함께했던 듯합니다. 그런데 12·3 계엄 발표를 보고 머리가 멍했던 기억이 나요. 이번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
저는 아이돌을 좋아하지도 않고, 그래서 응원봉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. 다이소에서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나온 전구를 둘둘 감은 소프트볼 방망이를 들고 집회에 다녔는데, 기수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허공을 메우는 모습이 참 힘이 되더라고요. 그중 한 명이 되고 싶었어요.
저는 지방 사람이고, 주말에만, 그것도 사정에 따라 매주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깃발을 뽑아봤자 많이 쓰지 못할 것 같아 미루던 날이 길었습니다. 그러는 동안 파면 선고도 차일피일 미뤄졌죠. 기껏 체포해서 넣어뒀더니 풀어주는 걸 보고 정말 화가 났던 것 같아요. 깃발을 뽑은 건 그즈음입니다. 평소 미루고 미루기가 습관이던 저이기에 '미루기 상습범'이라는 이름으로 제작하게 되었어요.
한두 번 흔들고 말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몇 주를 함께한 건지 모르겠네요. '미루기'는 소소한, 개인이 감당 가능한,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에서만 용서된다고 생각합니다. 온 나라를 스트레스받게 만들만한 일에는 '미루기'가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.